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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캠핑카 타고 떠나는 경주여행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by 수봉83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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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경주에는 여러 번 와봤지만 경주국립박물관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신라의 천년의 수도,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박물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라역사관 입구에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역사 연도를 쉽게 설명한 신라연표를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57년 4월 15일 시조 박혁거세가 즉위하였습니다.

3세기 중반 무렵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동쪽 무덤에서는 새 모양 토기가 발견됩니다. 새는 오리모양인데 특이하게 머리 위에 볏이 뭍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토기는 술 등 액체를 담았다가 따르는 주자입니다. 몸통 속은 비어있고 등과 꼬리부문에 있는 구멍으로 액체를 넣거나 따를 수 있습니다. 새 모양 토기는 죽어서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고픈 당시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신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철이었습니다. 철을 다루는 것은 당시 최고의 기술이었고, 철을 가진 세력은 다른 세력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국 보다 월등한 무기들이 필요했기에 쇠로 만든 긴 칼과 창 등 강력한 철제무기들을 만들었습니다. 또 전투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쇠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김목 항아리에 사람과 자연의 생명체를 주제를 한 다양한 형상의 토우를 부착하여 최대의 장식효과를 낸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토우항아리입니다.

8세기에 편찬된 일본의 역사책에서는 신라를 가리켜 눈부신 금과 은, 채색이 많은 나라라고 표현했습니다. 금은 신라가 고대국가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던 마립간시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왕은 금관에 금 허리띠를 착용하였습니다. 금고리는 물론 금반지와 금팔찌를 꼈으며, 금장식과 구슬을 꿴 목걸이 및 가슴꾸미개를 했습니다.

신라에서 불교를 받아들이자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이전에는 귀족들이 저마다 조상신이나 산천신을 숭배했습니다. 기존의 민간 신앙과 달리 불교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하는 신들의 존재감이 뚜렷하였습니다. 왕실의 귀족과 백성에게 부처의 신앙을 강조해 사상의 통일을 이루고, 더불어 왕과 왕족을 신격화하려고 하였습니다.

얼굴무늬 수막새 또는 인면문 수막새는 신라 시대의 기와 유물입니다. 수막새란 목조건물의 처마 끝에 있는 무늬 기와로, 이 수막새는 본래 신라시대 영묘사의 한 건물에 장식되었던 것입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우리에게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집어넣어 만드는데 종을 칠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아이가 그 어미를 부르는 소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종입니다. 특히 아름다운 종의 형태와 무늬,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습니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옥외전시장을 둘러본 후기는  우리나라 박물관 중 가장 잘 만들어 놓은 박물관인 것 같았습니다.  화려하고 기술이 뛰어나고 삼국을 통일시킨  똑똑한 정치력과 힘까지 견비한 우리들의 조상님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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